쿠팡에서 판매할 상품을 중국으로부터 들여와 유통하는 회사에 성공적으로 입사했다. 내가 맡게 된 일은 직원분들이 반복적으로 수행하던 업무를 자동화하고, 전반적인 업무 효율을 높이는 것이었다. 개발자는 나 하나뿐이다. 어쩌다 보니 직책은 CTO가 되었고, 일반적인 서비스 개발과는 조금 다르지만 실시간성과 주기적인 실행이 중요한 여러 기능을 책임지게 되었다.

기존에도 Codex를 활용해 작성된 코드베이스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DX 측면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했고, 간단한 기능 하나를 수정하거나 반영하는 데에도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처음에는 기존 구조를 유지하면서 개선해 볼 생각이었지만, 결국 이 상태로는 앞으로의 요구사항을 감당하기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렇게 기존 코드를 갈아엎겠다고 선언했다. 혼자 개발하는 환경에서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이 마냥 가벼운 일은 아니었지만, 당장 눈앞의 문제만 해결하기보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유지보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Next.js와 Camoufox 기반의 Node.js 스크래핑 서버를 구성하고, 스케줄링을 통해 쿠팡 셀러 계정과 상품 데이터를 주기적으로 수집하도록 만들었다. 프록시를 사용해 보기도 하고, Akamai의 봇 탐지 시스템을 우회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기도 했다. 예상대로 동작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고, 원인을 찾아가며 하나씩 해결해야 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과정이 정말 재미있었다. 이전에는 대부분 내가 직접 운영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요구에 맞춰 무언가를 만들어 납품하는 일을 해왔다. SI 회사에서 하는 일과 비슷했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런 일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조금 달랐다. 내가 작성한 코드가 실제로 직원분들의 업무를 줄여주고, 반복적으로 소모되던 시간을 아껴주며, 결국 회사의 운영 효율을 높이는 데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었다. 기술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당장 눈앞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을 사용하는 느낌이었다. 이전에는 얼마나 좋은 구조를 만들었는지, 어떤 기술을 도입했는지에 더 관심을 두었다면 이제는 내가 만든 것이 실제로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는지에 더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개발이라는 일을 처음 좋아했던 이유도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곳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분들은 굉장히 시원시원하시고 친절하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 주시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설명해 주신다. 사실 입사하기 전부터 걱정이 많았다. 개발자는 나 혼자인데 과연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기술적인 의사결정부터 설계, 개발, 운영까지 모두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정말 잘해낼 수 있을까? CTO라는 직책도 아직은 어딘가 어색하다. 누군가에게는 대단해 보일 수 있는 이름이지만, 내게는 그저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의미에 가깝다.

그럼에도 책임감이 어깨를 짓누르는 와중에 내 할 일을 꿋꿋이 해내고 있다. 모르는 것은 배우면 되고,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다시 들여다보면 된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게 살아왔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시작했던 일은 없었고, 막막했던 순간에도 결국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냈다. 물론 지금도 내가 잘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확신이 없다는 이유로 멈춰 있을 수는 없으니,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내고 있다.

돌이켜 보면 병역판정검사에서 재검 판정을 받은 뒤, 집에 박혀 개인사업자를 내고 미친 듯이 외주를 하던 경험이 지금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당시에는 앞날이 정말 막막했다. 들어오는 일은 일정하지 않았고, 버는 돈도 점점 줄어들었다.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조차 명확하지 않았다. 남들은 저마다 자신의 자리에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어딘가에 멈춰 있는 기분이었다. 내 인생이 정말 망한 것은 아닐까,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자주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다. 일이 없으면 일을 찾아다녔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공부했고, 당장 돈이 필요하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개인사업자로 일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혼자 책임져야 하는 일이었다. 개발만 잘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고객과 소통하고, 요구사항을 조율하고, 일정을 관리하고, 문제가 생기면 직접 책임져야 했다. 누구 하나 대신 해결해 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버겁기도 했지만, 결국 그런 경험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그때는 정말 힘들었지만 부모님께만큼은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와중에도 아버지께 스마트폰을 사드리고, 어머니께는 다이슨 에어랩을 선물해 드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 상황에서 굳이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나름대로 중요한 일이었다. 부모님께 무언가를 해드릴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고, 동시에 나 자신에게도 아직 괜찮다고, 그래도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사실 누구보다 불안했던 것은 나 자신이었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도 없었고, 지금 선택한 길이 맞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내면서 언젠가는 지금의 경험들이 쓸모 있어질 것이라고 믿어야 했다. 그 당시에는 그런 믿음조차 자기위로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많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때 억지로라도 해냈던 일들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다. 혼자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익숙해졌고,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해야 할 일을 찾아 움직이는 법을 배웠다. 무엇보다 막막하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된 것 같다.

결국 여기까지 왔다. 그렇게 망했다고 생각했던 인생도 어찌 됐든 흘러왔고, 지금은 한 회사의 기술적인 부분을 책임지는 자리에 앉아 있다. 물론 아직 이뤄낸 것은 많지 않다. CTO라는 직책이 내 능력을 증명해 주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만들어야 할 것과 해결해야 할 문제가 훨씬 더 많다. 지금의 내가 정말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인지는 결국 앞으로의 결과로 보여줘야 할 것이다.

앞으로는 단순히 직원분들의 업무를 자동화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회사가 AX를 실현할 수 있는 환경까지 만들어 보고 싶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지금의 기술적인 역량과 경험만으로 충분할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고, 내가 모르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의구심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어차피 처음부터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시작했던 일이 얼마나 있었던가.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결국 해봐야 아는 것이다. 부족한 것은 배우면 되고, 실패하면 다시 시도하면 된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앞으로 나 자신을 증명해 나가면 된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나 스스로 납득할 수 있도록.

AX로 갈 수 있을까? 의구심은 접어둬라. 나는 할 수 있다.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나는 산전수전 다 겪은 최강이다.

오늘도 그렇게 자기최면을 걸며 밤을 지새운다.

에휴.